2013/03/12 10:59

상식의 배반 War & Weapon & Human

유에Yue의 올바른 역사인식(?)



(전략)This study is based primarily on Soviet secondary sources, supplemented with Japanese materials. Soviet literature on the Manchurian campaign is extensive, and coverage has intensified in recent years. Many of the partici pants in the campaign have written memoirs or shorter commentaries on operations in Manchuria. The Far East commander, Marshal A. M. Vasilevsky, front commanders and chiefs of staff, army commanders, service commanders, and military historians have contributed their accounts of operations, many in book form. Numerous articles have appeared in Voenno-Istoricheskii Zhurnal [Military history journal] on specific aspects of the operation. Japanese sources are rarer, in large part because the Soviets captured the records of the Kwantung Army during the campaign. The Japanese monograph series on operations in Manchuria, published in the early 1950s, provides a sketchy account reconstructed from the memories of Japanese officers who served in Manchuria. Unfortunately, no monographs exist for some of the most heavily engaged Japanese units, and the few memoirs written on limited aspects of the operations are of marginal value.
이 연구는 주료 소련 측 2차 사료에 기반했고 일본측 사료를 보조 자료로 삼았다. 만주 전역에 대한 소련의 문건들은 광대하고 최근에 그 범위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전역 참여자들이 만주 전역에 대한 회고록이나 짧은 논평을 썼다. 극동 방면군 사령관 A. M. 바실렙스키 원수와 전선군 사령관들, 전선군 참모장들, 야전군 사령관들, 지원 제대 사령관들, 군사사가들은 수많은 책으로 작전 연구에 기여했다. 작전의 특별한 측면을 다룬 무수한 기사들이 군사사 저널을 통해 등장했다. 만주 전역에 대한 일본측 사료는 희귀한데 소련군이 전역 동안 관동군의 자료들을 거의 입수했기 떄문이었다. 만주 작전에 대한 일본 모노그래프 총서는 1950년대 초에 출간되어 만주에서 복무한 일본 장교들의 기억들을 재구성하는 밑그림을 제공했다. 불행하게도, 어떤 모노그래프도 가장 격렬하게 싸운 일본군 제대들에 대한 자료가 없으며, 몇몇 회고록들은 작전의 제한된 측면만 써서 가치가 적다.

In contrast to Japanese sources, Soviet sources are complete and accurate in their generalizations and in much of their operational detail. They freely discuss operational difficulties, although they sometimes exaggerate the scale of individual victories or denigrate the impact of local defeats. Often the Soviets simply gloss over unpleasant events. This study compares Soviet accounts with accounts contained in the Japanese monographs and other Japanese studies, notes where details match, and highlights some differences in interpretation and emphasis.
일본측 사료들과 비교해 보면, 소련측 사료들은 더 뛰어나고 개괄성과 작전술적 자세함이 정확하다. 소련군은 가끔 개별적인 승리를 너무 과장하거나 국지적인 패배의 효과에는 침묵했지만, 대체적으로 작전술적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했다. 그래도 소련군은 자주 별로 좋지 않던 사건들을 간단히 미화하곤 한다. 이 연구는 일본 모노그래프와 기타 일본측 사료들과 소련측 사료들을 교차검증하고 어느 쪽이 더 자세한지 지적하며 서로 해석하는 것과 강조하는 것의 차이를 조명할 것이다.

August storm: the Soviet strategic offensive in Manchuria/David M. Glantz. - Fort Leavenworth, Kan. Combat Studies Institute, 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1983.
(번역은 PKKA님의 블로그에서 발췌)


공산권 특유의 선동적 과장과 사상 목적에 따른 왜곡 및 수사는 서방측 연구가들에게 지난한 고통을 안겨주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오히려 그 때문에 서방의 공산권 연구자들은 이를 최대한 걸러내고 사실을 건지는 사료검증에 이골이 나 있고, 데이빗 글랜츠는 그 중에서도 2차대전 동부전선 군사사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 중 한 명이라는 데에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다. 때문에 그는 소련 기록에서 뭘 보고 뭘 제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기실 사료의 비판과 검증이란 역사학자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필수요소일 뿐이다.

소련에게 '대조국 전쟁(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 즉 2차 세계대전은 소련의 힘을 보여준 영광스런 투쟁의 역사임과 동시에, 3천만 인민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피를 뿌린 어마어마한 재앙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들은 2차대전을 모든 방향에서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하고 비판했으며, 그 결과물은 소위 '혁명'에 희생되기 전 투하쳅스키와 트리안다필로프가 정립한 위대한 군사과학의 결정체 '종심전투' 이론과 더불어 소련 군사학의 근간이 됐다.

이 방대한 소련 내부 군사자료 및 사료들은 오랫동안 서방 연구가들에게 미답의 영역이었지만, 이것이 소련 붕괴 이후 조금씩 해금되면서 그간의 독소전쟁사에 대한 서방의 연구결과들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튀어나오던 소련군 사단들은 그저 넘치도록 많은 소련 남자들을 무턱대고 퍼부어서 만든 게 아니라, 패주한 부대의 잔존병력과 러시아 전역의 공산당 세포조직을 동원해 간신히 그러모은 장정들로 재편한 누더기 부대였다. 전쟁 초기 재앙에 가까운 패주의 연속에서 소련군 총참모부가 할 수 있었던 건 '병력은 필요한 곳에만 집중배치해라' '기도비닉을 철저히 하라' 따위의, 명령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등학교 레벨의 지침을 뿌리는 정도였다. 독일군이 지리멸렬하여 본토로 쫓겨들어간 전쟁 말기에도 소련군의 과도한 병력손실률은 좀체 떨어지지 않았고, 이 시기 상당수의 소총병사단은 정원의 30%를 밑도는 병력으로 제대단위만 유지한 채 작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소련은 흔히 알려진 것과 같은 '인해전술'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었고, 독일 못지 않게 기도비닉과 기만책에 크게 의존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생각 외로 솔직하고 가감없이 자국의 현실과 실책을 비판한 소련측 자료에서 낱낱이 밝혀져 있다.

그렇게 20년도 더 되는 세월이 지났다. 그간 축적된 2차대전 전쟁사 연구의 성과는 동아시아의 어느 듣보잡 유사역사학자가 감히 시덥잖은 음모론을 내세워 사료의 편향성을 운운할 만큼 녹록치 못하다. 물론 위의 논문은 83년의 것이라 소련측 1·2차 사료가 대대적으로 해금된 90년대 이후의 저작에 비할 바는 아니고, 실제 저자 본인이 후에 사료 등을 크게 보충하여 사실상 '2.0' 버전 개정판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개정판이라고 '사실 우리 소련은 준비 개뿔도 못했고 얼렁뚱땅 작전에 나섰어염 ㅠㅠ' 따위로 내용이 뒤바뀌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애초에 그딴 음모론이 학계의 논란거리가 되어본 적도 없다. 오직 저 유사역사학자나 열심히 떠드는 떡밥일 뿐이다.

소련은 익히 알려진 대로 미국의 유상 물자원조, 즉 렌드 리스(Lend lease)로 천문학적인 양의 자원과 군수품을 지원받았다. 그러고도 꾸준히 원조량을 터무니없이 늘려달라는 요구로 워싱턴의 골치를 썩힌 것 또한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 놈들이 얄타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지킬 자신이 없네 어쩌네 했어도 소련군의 준비가 철저했다는 사실과 모순될 게 없다. 그건 그냥 소련이 항상 하던 대로 엄살과 반협박을 통해 연합군의 양보와 지원을 최대한 울궈내려고 기를 썼다는 뜻이 될 뿐이다.

자기들에게 꼭 필요한 전쟁기록과 연구에는 거짓을 늘어놓으면서, 승리를 목전에 두고 전리품 배분을 논하는 장에서 미래의 경쟁자들 앞에 솔직하게 자기네 약점을 까발렸다고? 참으로 존경스럽다. 자기 상식을 배신하는 것만큼 고된 일에 성공한 사람이 달리 얼마나 있겠는가.



p.s. 주류 역사학의 고고한 경지에 감히 자격도 없는 미천한 아마추어들 따위가 도전하느냐고 일갈하던 인간이(참조 #1, 참조 #2) 이제는 그 역사학계의 권위자더러 사료를 편식했다고 지껄이고 있다. 그러는 본인의 사료 선택이 정작 얼마나 균형적인가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으로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그 학계의 자격과 권위란 것을 저 유사역사학 나부랭탱이는 자기 맘대로 줬다 뺏을 수 있는 명찰 쯤으로 착각하는 듯 하다. 이 쯤 되면 어떤 아집과 편견을 넘어 일종의 정신적 장애를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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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3/03/12 11: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12 11: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12 11: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12 11:5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대공 2013/03/12 13:46 # 답글

    무슨 일들인가 했더니 저분 또 저지르셨군요.
  • Bluegazer 2013/03/12 13:50 #

    뿌지직뿌지직 뿌직뿌직 텅!
  • 누군가의친구 2013/03/12 13:47 # 답글

    학교 도서관에서 보니 일이 웃기게 되었군요. 마침 학교 도서관이라서 몇몇 재밌는 자료를 확인하여 트랙백 하였습니다.
  • Bluegazer 2013/03/12 13:51 #

    저 새끼 자학 취미 있대요?
  • 누군가의친구 2013/03/13 13:48 #

    그리고 오늘글도 참 명문입니다.ㄲㄲㄲㄲ
  • 지나가던과객 2013/03/12 14:44 # 삭제 답글

    소크라테스 옹 曰 : 너 자신을 알라.
    역사학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주화입마 하신 모 님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 Bluegazer 2013/03/12 15:36 #

    역사학에 대한 자부심은 무슨, 그냥 자의식 과잉이 병이 된 것 뿐입니다.
  • 쿠루니르 2013/03/12 19:03 # 답글

    허허허, 박사 학위는 고스톱으로 따셨나요? 그냥 시원하게 자료로 반론하면 될텐데(할 수 있을지는 둘째치고) 말꼬리만 잡으니 이래저라 박사 학위 인식만 나빠지는군요
  • Bluegazer 2013/03/13 09:32 #

    정말 어떻게 학위 땄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친 빽으로 딴 나이롱 학위인가?
    쟤 저렇게 말장난만 한 지 햇수로 2년차입니다. 전엔 증거랍시고 이거저거 내놓더니 이제는 그조차도 한계인 모양입니다. 그러니 반론을 못하죠.
  • 무명병사 2013/03/12 19:13 # 답글

    박사라는 사람이 인신공격을 반론이랍시고 하니 저질도 이런 저질이 없네요.
  • Bluegazer 2013/03/13 09:31 #

    반론 능력이 안 되니까 반론 대신 욕지거리밖에 할 게 없겠죠
  • Real 2013/03/12 19:50 # 답글

    논쟁때마다 자기 반론에 저런식이니.. 어휴..
  • Bluegazer 2013/03/13 09:32 #

    정작 자기는 학계의 논쟁에 참여도 못하고 책 팔아먹는 주제에 블로거들이랑은 토론도 못하겠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대체 저 새낀 누구랑 토론한대요? 자기 똘똘이?
  • 2013/03/13 07: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Bluegazer 2013/03/13 09:34 #

    남침유도론 따위를 울궈먹는 저능아가 주류일 리가요. 학계에서는 학계대로, 인터넷에서는 인터넷대로 좋은 말로 아웃사이더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트롤이죠.
  • γοργεους 2013/03/13 12:12 # 삭제 답글

    전에 경기병 논쟁 때 재밌었는데 말이죠. 저분 아마 디코 시절에도 저러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 Bluegazer 2013/03/13 13:29 #

    디코 시절부터 놀았던 놈 레벨이 저 모양이라고요? 아구야...
  • γοργεους 2013/03/13 14:54 # 삭제

    그랬던 거 같긴 한데 확실하진 않아요. 워낙 오래된 일이라......ㅎㅎ
  • PKKA 2013/03/17 15:36 # 답글

    핑백 거시고 포스팅 하신것에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이제까지 몸이 좀 안좋았었습니다.
    소련측 사료에 대한 글랜츠의 평가는 http://pkka1918.egloos.com/407953가 있습니다.

    저도 소련의 군사사 저널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데 해석이 적지 않게 과장되고 자화자찬으로 가득하긴 하지만, 인용한 자료들 중에 최소한 1차 사료가 하나라도 있으며 모든 각주를 1차 사료로만 구성한 경우도 있는 등 신뢰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 Bluegazer 2013/03/17 15:55 #

    미리 말씀이라도 드리고 했어야 하는데 송구스럽습니다. 워낙 번역이 좋아서 그대로 쓰게 됐네요. 확실히 그 선동적인 수사나 자화자찬은 동구권 자료를 접할 때 넘어야 할 벽인 것 같습니다. 사료는 아니지만 국가의 해양력도 그 때문에 꽤나 읽기 난감하더군요.
  • PKKA 2013/03/17 18:45 #

    번역이 좋았다니 감사드립니다. 사실 오역을 한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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