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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 Emperor and Sanguinius! Death! DEATH!"


by Bluegazer | 2009/12/31 23:59 | 트랙백 | 덧글(10)

제국 국교회(Adeptus Ministorum) Part 1

전에 모처에 연재하던 글을 재정리해서 워해머 xp와 이글루에 포스팅.
그때는 미처 번역을 안 한 뒷부분도 이참에 마저 해서 올릴 예정.
출처는 구판 '시스터 오브 배틀(Sisters of Battle)' 코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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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황금옥좌Golden Throne에 안치되기 이전부터 많은 제국 신민들이 그를 신으로 섬겼고,
특히 대성전Great Crusade 기간 중에 재통합된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서 그런 경향이 짙었다.
문명이 덜 발달한 지역 주민들은 '불꽃 날개가 달린 마차를 타고 신들이 내려오셨다'느니 '그들은
적을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죽일 수 있다' 같은 얘기를 하곤 했다. 물론 이런 기상천외한 소문들은
착륙선을 타고 상륙한 제국 사자들을 보고 하는 소리였지만, 어쨌건 황제라는 강대한 존재는 그가
가는 어디에서건 살아있는 신 취급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윽고 호루스 헤러시Horus Heresy가 폭풍처럼 제국을 휩쓸었다. 전 인류가 참혹한 내전에
휘말리며 그 운명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내몰렸다. 호루스가 승리를 거머쥐었다면 인류는 결국
카오스 신들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호루스의 군세가 테라를 침공했고, 타락한
워마스터Warmaster 호루스와 황제는 인류 사상 공전절후의 결투를 벌였다. 결국 호루스는
황제의 손에 최후를 맞았지만 황제 역시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고 기계교Adeptus Mechanicus가
만든 황금옥좌에 안치되었다. 그의 영혼은 워프Warp에 녹아들어 기약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황제에 대한 숭배와 흠모의 물결이 갑작스레 밀어닥친 것은 이때부터였다. 황제의 모습을 보거나
그의 목소리를 듣고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제국 전역에 걸쳐 나타났고, 이러한 '예언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을 따르는 신도들이 모여 저마다 무수히 많은 종파Cult를 이루었다. 이들을 아우르는
중앙조직이나 강제력 같은 것은 전혀 없었으며, 심지어 한 행성에서만 수 백개의 서로 다른 종파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이렇게 생긴 종파들은 저마다 교리 해석이나 의례 절차 등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중 세력이 강한 종파들이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었고, 그보다 약한 종파들은
없어지거나 더 큰 종파에 흡수되면서 신앙체계도 조금씩 통일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전 제국에 걸쳐
수많은 종파들이 할거하는 가운데, 이들은 저마다 주변 지역에 선교단을 보내 자신들의 교리를
설파하고 다녔다.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한 종파 중 하나가 바로 구세주 황제 성전Temple of Saviour Emperor이었다.

구세주 황제 성전은 여러 면에서 다른 경쟁세력에 비해 유리한 점이 많았다. 우선 황제가
잠들어 있는 곳이자 제국의 수도인 홀리 테라Holy Terra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 두 번째로는
전쟁 영웅이자 황궁 공방전에도 참가한 전력이 있는 유명한 임페리얼 가드Imperial Guard
장교 출신의 지도자를 둔 점이었다. 본명이 밝혀지지 않은 그 지도자는 황제가 꿈속에 나타나
가르침을 내리셨노라고 주장했고, 고대 테라 언어로 '예언자'란 뜻의 파디티쿠스Faditicus란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붙였다.

구세주 황제 성전은 테라의 제국군 장병들 사이에서 계급을 막론하고 큰 지지를 얻었으며,
이들이 임무에 따라 제국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교단의 세력도 같이 퍼져 나갔다. 테라에서
교단의 가르침을 받은 장교들은 휘하 장병들에게 다시 이를 주입시켰으며, 선교사들 역시
꾸준히 전 제국을 돌며 포교활동을 벌였다. 그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의 믿음도 교단의 가르침에
교묘히 통합시키는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파디티쿠스가 12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당시,
테라에만 무려 십억 명의 신도가 있었고 세그멘툼 솔라Segmentum Solar 전체 신도 수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헤러시의 여파로 아직 제국 전역이 무정부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구세주 황제
성전은 제국 신민을 하나로 묶는 힘이 되었다. 구세주 황제 성전의 뜻에 따르지 못한 지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파탄을 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들은 주민들을 선동해 불신자들을
색출하게 하였으며 이는 종종 폭력사태로 치달았다.

교단의 이름 하에 더욱 치졸한 행위도 서슴치 않고 자행하는 가운데 그 세력은 날로 성장을
거듭했고, 32번째 천년에 이르자 무려 제국민의 3분의 2가 교단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다.
마침내 32번째 천년 초반 구세주 황제 성전은 제국 국교로 공인을 받고 새로이 제국 국교회
Adeptus Ministorum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로부터 약 200년 후, 국교회의 수장인 교황
Ecclesiarch 베네리스 2세Veneris II는 제국을 통치하는 12인의 하이로드High Lords of Terra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고, 다시 300년 후 황제교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교황의 자리는 원로원
council of the High Lords의 영구직 중 하나로 고정되었다.

아뎁투스 테라Adeptus Terra(제국 중앙정부)를 등에 업고, 황제교Ecclesiarchy는 제국
신민들과 군인들 사이에서 경이적인 속도로 그 영향력을 넓혔다. 국교회의 교리를 거부하는
자들은 불신자로 규정되어 추방당하거나 이단 혐의로 처형당했다. 국교회는 제국을 여러
교구diocese로 나누고 각 교구에 추기경Cardinal을 두어 교구 내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전도사Missionary와 선교사Preacher들을 관장하게 했다.

국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 자체의 운영을 떠맡을 하부기관이 설립되었다. 부주교
Arch-Deacon와 부제Deacon들이 임명되어 황제교 사원 등의 건축사업과 그에 종사하는
노무자들을 관리하고 십일조tithe 징수에 관한 규정을 설정했다.

이 당시 황제교의 힘을 위협하는 유일한 종단은 행성 디마마르Dimmamar에서 창시된
빛의 동맹Confederation of Light이었다. 이들은 참회를 바탕으로 하는 교리를 갖고 있었으며,
황제의 희생이야말로 모든 이들의 본보기라고 여겼다. 그들의 청빈하고 검소한 교리는 황제교의
그것에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황제교 교리에 따르면 희생이라 함은 시민들의 몫이며, 있는
그대로의 돈이나 부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빛의 동맹의 힘은
매우 강대하여 국교회의 선교사들은 이들의 세력권 내에서는 좀처럼 힘을 펴지 못했다.
마침내 국교회는 원로원 만장일치로 첫 번째 ‘신앙수호 전쟁War of Faith’을 선포했다.

빛의 동맹은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임페리얼 가드와 네이비를 비롯한 정규군 병력이 출진한
가운데, 황제를 위해 싸우겠다며 모여든 민간인들까지 원정군을 따라나섰다. 일부 소규모
사원이나 성당들만이 간신히 황제교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빛의 동맹 교단은 사실상
존재를 말살당했다. 제국 국교회의 절대적 지위가 완성된 것이다.

33번째 천년 말기에 이르자, 아뎁투스 메카니쿠스나 스페이스 마린 통제하의 행성들을 제외한
전 제국 행성에 황제교 사원이 세워졌다. 수많은 신도들의 십일조와 공물이 황제교 재정을
채웠고, 이들 자금은 사원 증보축과 신앙수호 전쟁을 통해 황제교 권력을 다지는데 쓰였다.

황제교의 힘은 제국 사회 곳곳에 뻗쳐나갔다. 노동자들부터 제국군 장교들, 행성 총독은
물론이고 하이로드들마저 황제교의 일원이 되었다. 하이로드들은 교황을 황제의 입이라
여기며 그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황제교가 하는 일은 방해받아서는 안된다는
믿음이 퍼졌다. 이윽고 황제교는 제국법은 물론이고 군 조직 편성이나 외부 위협 대처의
우선권 부여 및 제국 내 자원 통제 전반 등을 간접적으로 좌우하게 되었다.

황제교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제국을 이루는 요소들은 통제를 잃어갔다. 원로원의 일원인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의 생산총감Fabricator-General이 황제교의 행보에 반대입장을 내세웠고,
스페이스 마린의 챕터마스터Chapter Master들 역시 현 제국 질서에 의문을 품었다. 이들에
힘입어 아뎁투스 아드미니스트란툼Adeptus Administrantum이 황제교 권력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통제수단의 상실에 분개한 아드미니스트란툼은 스스로의 조직을 재구축하여 제국내 통제력을
회복하는데 주력했다. 이렇게 시작된 반목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7천년간을 계속해온 것이다.
아드미니스트란툼은 원로원의 표결에 영항력을 행사하거나, 아드미니스트란툼에 충성하는 자를
요직에 배치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황제교의 권위를 근본부터 침식해 들어갔다.

34번째 천년 후기에서 35번째 천년 초기에 이르자 황제교의 힘은 크게 쇠퇴했다. 끔찍할 정도로
힘없고 무능한 교황들이 잇달아 선출되면서, 아드미니스트란툼은 계속해서 국교회가 가진 통제력 중
상당수를 되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드미니스트란툼이 다시금 주도권을 장악했다.
표면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황제교는 더할나위 없이 강대하고 전능한 존재였지만 그 이면에서는
아드미니스트란툼이 교황청Holy Synod의 의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아드미니스트란툼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황 베네딘 4세Benedin IV는 교황청과 황제교
고위 간부들을 세그멘툼 템페스투스Segmentum Tempestus의 행성 오필리아Ophelia VII으로
옮겼다, 이곳은 베네딘 4세가 추기경으로 재임하던 교구임과 동시에, 테라와 화성에 이어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행성이었다.

오필리아 VII에 세워진 교황궁은 면적 9만 평방마일, 높이 4천미터를 자랑하는 건물로 테라의
황궁에 비견될 만했다. 아드미니스트란툼과 아득한 거리에 자리잡은 황제교는 다시금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징벌의 의미로 십일조 세율이 계속해서 높아졌고 황제교의 재정은 크게
증가했다. 각 교구의 추기경들은 거대한 기념비나 사원을 경쟁적으로 세워댔고 이단 종파에
대한 정화가 갈수록 늘어갔으며 황제교의 뜻에 반대하는 세력은 무자비하게 숙청되었다.

아드미니스트란툼과 별도로 황제교는 항성간 항행능력을 가진 함대와 지상병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군대는 프라테리스 템플라Frateris Templar라 불렸으며 엄청난 수의 상선과
군함, 각각 임페리얼 가드 1개 연대와 맞먹는 전력의 전투부대를 수십개씩 보유했다. 이에 반해
지구에 있던 황제교 건물들은 폐허로 변했다.

오필리아 VII으로 천도한지 약 3백년이 지난 35번째 천년 중반, 그레고르 11세Greigor XI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매우 신심이 깊었던 그의 선출은 황제교의 발전을 향한 일보 전진이자
심하게 경직된 교황청의 행보에 박차를 가할 새 바람의 전조로 여겨졌다. 그러나 다음에
찾아온 것은 추기경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일이었다. 그레고르 11세는 국교회가 다시
지구로 돌아갈 것임을 선포했다. 황제교 내외에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레고르 11세는 오직 테라만이 진정한 믿음의 근원이자 인류의 고향이라 여겼다.

결국 그의 행보는 아무도 막지 못했다. 지구로의 귀환을 준비하기 위해 자원을 재배치하고
워프 항행에 필요한 물리적 여건을 조성하는데 12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마침내 테라 구 교황궁의
문이 다시 열렸다. 궁을 다시 손보는데 들어간 비용은 이미 심하게 쪼들리던 교단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이 재천도로 인해 황제교 재정은 바닥을 드러냈고, 이를 벌충하기 위해
황제교는 십일조 세율을 더욱 끌어올렸다.

재건사업이 진행되면서 그레고르 11세는 국교회의 또다른 구조개혁을 위한 정지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교황청 내에서도 급진적이라는 평가가 대세였으며 다시 한 번 교황은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미처 개혁이 시작되기에 앞서, 그레고르 11세는 독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죽음을 맞았다.
애도의 물결 속에 그의 장례식이 치러쳤고(6백만명이 그의 운구행렬을 뒤따랐다고 전해진다)
추기경단은 ‘위대한 사람이 너무도 일찍 떠나갔다’고 애도했다. 그러나 그레고르의 시신이
거대한 추모릉Mausoleum Remembrance에 안치되고 눈물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더 보수적인
새 교황이 선출되었고 황제교는 이전의 행보를 계속하게 된다.





by Bluegazer | 2008/07/14 00:45 | Warhammer 40k-잡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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